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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라어 성경/헬라어 성경에 대하여

기독교의 역사에 대한 간단한 정리 - 동서대분열을 중심으로

by 소포로스 2021. 6. 22.

 

기독교의 역사에 대한 간단한 정리 - 동서대분열을 중심으로

 

1) 머리말


기독교의 역사는 단순히 일개 종교의 역사가 아니라 인류 역사의 일부이며 한때는 서유럽 역사의 본류였다. 2016년 로마 가톨릭 교회의 프란치스코 교황이 쿠바에서 러시아 정교회의 끼릴 총대주교를 1천년만에 처음으로 만났다는 기사를 보면서, 동방정교회와 그리스 교회는 무슨 뜻이고, 러시아 정교회와는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콘스티노폴리스의 정교회는 어떤 위치에 있는지 등등이 종종 궁금하였다. 톨스토이 소설이나 영화에서 보이는 러시아 정교회에 대한 궁금증도 해결하고 싶었다. 그래서 간단하게 정리해 보았다. 


지금까지 러시아 정교회는 로마 교황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았다고 하며, 이 만남을 준비하는데 20년이 걸렸다고 한다. 역대 교황들이 터키를 방문해 콘스티나폴리스의 총대주교를 만난 적은 있지만, 카톨릭 정교에서 가장 큰 세력을 가지고 있고 가장 영향력이 큰 러시아 정교회 수장과 만난 것은 저 때가 처음이라고 한다. 

(16세기 종교개혁 이후의 신교 조직은 다루지 않았으며, 겨우 인터넷에 나온 자료와 평소의 상식을 바탕으로 정리하였음. 오류에 대한 지적은 감사히 받겠으며 바로 수정하겠음.)

 

 

2) 성경 판본의 문제와 동서대분열

신약성경은 처음부터 그리스어로 쓰여졌고, 기독교가 공인된 이후 로마교구를 제외한 로마제국의 대부분의 대교구에서는 그리스어 성경을 사용하였다. 에라스무스가, 기독교 공인 이후부터부터 당시까지 지속적으로 사용되었던 그리스어 신약 성경 대신에, 여러 사본을 바탕으로 어설프게 신약성경을 짜깁기하여 편집한 것도 동서대분열과 무관해보이지 않는다. 현재의 성경 판본 문제도 이와 관련이 있는 듯 하다. 

가톨릭 정교회는 콘스탄티누스 황제 이래의 그리스어 성경을 천수백년 동안 매주 사용하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로마카톨릭교회와 개신교회에서는 당시의 필사본을 발굴하여 이를 비교 대조하는 본문 비평을 통하여 새로운 그리스어 성경책을 내놓고 있다. 이중에서 현재 가장 널리 유통되는 비평본 그리스어 성경책은, 랄프스-한하르트(Rahlfs- Hanhart) 판 구약과 네스틀레-알란트(Nestle-Aland)판 신약이다. 

3) 동서대분열의 역사적 과정

로마제국의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4세기에 기독교를 공인한 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중심으로 로마, 예루살렘,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등 5개의 대교구를 설치하였고, 이들 모두는 하나의 보편교회(카톨릭교회, ἐκκλησια καθολικη, 에클레시아 카톨리케)의 일부였다. 이중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예루살렘만 빼면 당시 세계의 최대의 중심도시들이다. 

카톨릭의 어원인 그리스어 καθολικός(까톨리꼬스)는 '전체의, 일반적인, 보편적인'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5명의 총대주교는 황제의 지휘를 받는 동등한 지위를 지녔고, 특성상 황제가 거주하는 수도인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가 동등한 가운데 선임으로 인정받았다고 한다. 

* καθολικός, καθολική, καθολικόν(1.2변화 형용사) 일반적인, 보편적인. 영어로는 general에 해당하며, '전-' 또는 '총-'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general church는 총교회 또는 전교회라고 번역할 수 있다. 

교회의 분열은 로마 대교구가 로마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게르만족 등 이민족의 지배를 받으면서부터 시작되었고, 프랑크 왕국에서 카롤링거 왕조를 연 피핀3세(피피누스 3세 브레비스, 샤를마뉴의 아버지)가 정치적 필요성에 따라 교황국가(Papal State,1870년까지 존재)를 754년에 로마교회에 기증하면서 구체화되었다. 이 때부터 로마교회는 교황령(교황국가)이라는 영토와 세속권력을 획득하게 되었다. 그리고 황제이자 교황인 로마 황제(동로마)의 지배에서 벗어나 프랑크 왕국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 더 나아가 800년 교황 레오 3세가 샤를마뉴(카룰루스) 1세에게 황제의 관을 씌우고 서로마제국 멸망 300여년 만에 로마제국의 부활을 선언함으로써 동로마로부터 완전한 심리적 독립까지 이루어낸다. 


교황을 뜻하는 라틴어 폰티펙스 막시무스(Pontifex Maximus, 최고 사제)는 원래 신정일치 국가였던 로마제국에서 황제가 사용하기도 했던 명칭이다. 황제가 없던 로마공화정 때는 폰티펙스 막시무스가 별도로 있었지만, 로마제국을 연 시이저가 사용한 이래 로마 황제의 칭호 중 하나로 사용하였다.   


1054년 로마 대교구는 교리해석의 차이를 이유(사실은 그 이전에 이미 균열)로 기존 교회조직에서 이탈하여 독자적인 길로 나아갔는데, 이를 동서대분열(East–West Schism)이라고 한다. 영토와 군사력 등을 확보한 로마 대교구는 동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는 보편 교회의 제재에서 이미 벗어난 것이다. 1204년 로마 교회의 영향 아래 있던 제4차 십자군이 동로마제국의 콘스탄티노풀리스(콘스탄티노플, 현재의 이스탄불)의 교회를 약탈하고 성직자들과 신도들을 학살하면서 교회의 분열은 완성되었다.  

1204년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폴리스 약탈


제4차 십자군이 저지른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약탈과 파괴는 단일 사건으로 역사상 최대의 문명적 재앙이라는 주장도 있다(위키). 엄청난 양의 그리스-로마의 고대 문화유산이 파괴되고 약탈당하였다. 스페인이 저지른 중남미의 아즈텍 제국, 잉카제국, 마야문명 등의 파괴와 함께 인류 문명사에서 최대의 재앙이었음은 틀림없다.

 

4) 교회 대분열 이후

로마시대부터 지속되어 온 이 보편 교회(공교회)의 공식 명칭은 현재 정통 카톨릭 교회(Orthodox Catholic Church, 소위 '동방정교회')이며, 동로마제국이 멸망한 후 러시아가 이를 계승하면서 로마 대교구가 빠진 대신 모스크바에 대교구가 새로 추가되었다.  

1453년 로마제국(동로마제국, '비잔틴제국')이 이슬람을 믿는 오스만 제국의 침략으로 멸망하면서, 로마제국의 황제교황은 사라졌다. 그리고 동등한 지위를 가진 나머지 4명의 총대주교가 보편교회를 이끌었다. 이런 상황에서 모스크바 대공은 스스로 모스크바 대공국을 로마제국의 계승자로 선언하고, 자신을 로마 황제의 후계자로 자처하면서 정통카톨릭교회(보편교회)의 유일한 군주(일종의 '교황')로 등극한다. 1472년 이반 3세는 로마(동로마)의 마지막 황제의 조카와 결혼하면서, 문장도 동로마 제국의 쌍두 독수리로 바꾸고 대공의 칭호도 로마식인 짜르('카이사르', 황제)로 바꾼다. 그들은 모스크바를 로마와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이은 제3의 로마로 여겼다. 모스크바에 동화나라와 같은 돔 모양의 건물이 많은 것도 우연이 아니다. 제2의 콘스탄티노폴리스(이스탄불)을 건설한 것이다.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함락 후에 많은 성직자들이 이슬람교도로부터 귀중한 기독교 문서들을 보존하기 위하여 모스크바로 들고 갔다고 한다. 

1593년에는 4대 총대주교들(콘스탄티노폴리스,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예루살렘)이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모여 모스크바 대교구의 수장에게 5번째 총대주교좌를 부여하였다. 

새로 독자적인 길을 걷고 있는 로마교회의 공식 명칭은 로마 가톨릭 교회 또는 가톨릭 교회(Roman Catholic Church, Catholic Church)이다. 로마 가톨릭 교회라는 명칭보다는 점차  '가톨릭 교회'라는 명칭으로 더 자주 불린다. 그리고 원래 '가톨릭 교회'였던 정통 카톨릭 교회의 명칭에는 꼬박꼬박 '동방'이나 '비잔틴' 등의 수식어를 붙혀서 구별한다. 

로마 대교구와 모스크바 대교구를 제외한 나머지 대교구들은 이슬람 국가의 지배를 받으면서 그 세력이 급격히 약화되었고, 점차 여러 나라의 교회 조직이 독립하여 자치교회가 되었다. 정통 가톨릭 교회(동방정교회)는 실제적인 의미에서 볼 때 이제는 더 이상 '보편교회(가톨릭 교회, 글자적 의미의 '하나의 교회 조직')'가 아니다. 예를 들어, 그리스 교회는 콘스탄티노폴리스 대교구로부터 독립하여 1850년부터 자치교회가 되었다. 아테네 대주교가 최고의 지위이다. 로마 교회나 콘스탄티노폴리스 교회의 하부조직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현재는 정통카톨릭교회 중에서 나중에 새로 추가된 모스크바 대교구가 가장 큰 교구이고 가장 영향력이 크다고 한다.  

라틴어를 사용한 로마대교구를 제외한 콘스탄티노폴리스, 예루살렘,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등의 대교구는 모두 그리스어 성경을 사용하였다. 처음부터 로마 황제의 명에 따라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그리스어 성경이 마련되었던 것이다. 콘스탄니누스 황제는 당시에 50개의 성경책을 제작하여 배포하도록 명하였다고 한다.

 

 

교황·러시아 정교회 '천 년 만의 만남'..."우리는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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