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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어 이름

그리스인들의 이름과 성씨

by 소포로스 2022. 1. 5.

 

그리스인들의 이름과 성씨


이름과 성씨의 역사를 보면, 이름이 개인의 구별이라는 목적이 있다면, 성씨는 국가적 통치나 과세 또는 가문의 과시 등과 관련이 있다. 그리고 성씨의 보편화는 신분제 철폐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다음은 그리스인들의 성씨에 대한 이야기이다.


1) 고대 그리스 시대

 

(1) 상고시대, 고전시대 그리고 헬레니즘시대


고대 그리스에서는 기본적으로 1개로 된 ⓐ 이름을 사용하였다. 종종 이름 대신 ⓑ 누구의 아들이라고 부르기도 하였으며, ⓒ 이름 + 누구의 아들 또는 ⓓ 이름 + 출신지나 ⓔ 이름 + 누구의 아들 + 출신지 등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개인의 이름을 제외한 나머지는 이름을 수식하는 역할만 하였을 뿐, 후손에게 물려주는 성씨 개념은 아니었다.

이런 관행은 미케네 문명시대부터 알렉산드로스 정복 이후 그리스계 국가시대(헬레니즘 시대)까지 이어진다. 아마도 1800년대 대부분의 그리스 민중들이 성씨를 가지기 전까지 이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상고시대에는 누군가를 부를 때 본인 이름이나 아버지의 이름(부칭)을 사용하였으며, 고전시대가 되면 여기에 출신지나 주거지를 추가한 것으로 보인다.

① 아킬레우스 (개인 이름)
② 펠레이아데스 (‘펠레우스의 아들’, 펠레우스는 아킬레우스의 아버지)
③ 아킬레우스 펠레이아데스 또는 펠레이아데스 아킬레우스
④ 헤로도토스 할리카르나소스(출신지와 이름을 함께 쓰는 경우)
⑤ 데모스테네스 데모스테네스의 아들 파이아니아(이름, 부칭, 거주지)
* Δημοσθένης(데-모스네-스) Δημοσθενείδης(데-모스테이데-스) Παιανία(파이아아)

☞ ⑤번은 아버지의 이름과 아들 이름이 같은 경우이며, 파이아니아는 아테네의 행정구역 이름이다. 우리식으로 보면, ‘동수, 동수의 아들, 옥수동’이다. 민회 등에서 정식으로 이름을 부를 때 이런 형식을 사용하였으며, 후손에게 물려주는 성씨 개념은 아니었다.

* 부칭(patronymic) : '너는 누구의 아들이냐?'를 나타내는 방식이다. ‘니 아부지가 누구냐?’를 중시하는 사회의 소산물이다. 만약 아테네 시민권을 가진 여성이 외국인과 결혼하여 태어난 자식은 부칭 대신 모칭을 사용하였다.

참고
Αχίλλευς 아-레우스
Πηλεύς 펠-우스
Πηληϊάδης 펠-레-이데-스 또는 Πηλείδης 펠-이데-스
☞ Πηλεύς(펠-우스)  +‎ -ίδης(데-스, 부칭어미)

 




(2) 서로마 시대( 동로마 이전 로마시대)


우리가 보통 '로마시대'로 부르는 이 당시의 그리스는 로마의 일부였다. 

로마 시민권을 취득한 그리스 인들은 자신들의 그리스식 이름을 성씨로 사용하여 3부분으로 구성된 이름(로마식)을 사용하였다. 예를 들면 "개인이름 + 시민권 취득시 보증인 등 + 그리스 이름” 형태로 이름을 지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그리스인들은 기존의 전통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참고 : 로마인들의 이름 이야기

[영웅들의 비교 일대기]를 그리스어로 쓴 풀루타르코스는 로마의 시민권자여서 아래와 같은 이름을 가졌다. 

루키오스 메스트리오스 플루타르코스(서기 1-2세기)
Λούκιος Μέστριος Πλούταρχος(그리스어) 
Lucius Mestrius Plutarchus(라틴어)

로마시대 사람으로 즉 로마인이지만 그리스어로 역사를 서술한 학자들 이름은 다음과 같이 이름 + 출신지로 표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영어 위키백과를 참조함).

플루타르코스 카이로네이아(Plutarch of Chaeronea) - 워낙 유명해서 출신지명을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디오니시우스 할리카르나소스(Dionysius of Halicarnassus)
아피아노스 알렉산드리아(Appian of Alexandria)
아리아노스 니코메디아(Arrian of Nicomedia)

나사렛 예수는 로마공화정 말기에 태어나 로마제국 초기에 활동을 하였다. 그를 지칭할 때 성씨 대신 출신지명을 사용하고 있다.  

마태복음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하는 것으로 보아 유대인들도 로마시대까지 성씨를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로마시대 사람인 요셉과 예수도 성이 없었고 그의 제자들도 성이 없었다. 같은 시대의 요안네스 마르코스가 마가복음을 썼다고 알려져 있으므로 이 때부터 일부나마 서서히 성씨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아킬레우스. c. 300 BC(wiki)




(3) 고대 그리스의 여성 이름


고대 그리스에서는 여성을 부를 때 이름 대신 ‘아무개의 딸’ 또는 ‘아무개의 아내’ 등으로 부르는 것이 예의였다고 한다. 한국의 여성들이 박씨 여인, 안씨 부인 등으로 불렸던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묘비명 등에는 이름이 사용되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나오는 크뤼세이스는 아폴론 신전의 사제 크뤼세스(‘황금’을 의미)의 딸이다. 보통 영어 번역이든 한국어 번역이든  크뤼세이스를 이름으로 번역하는데, 실제로는 이름일 수도 있고 ‘크뤼세스의 딸’이라는 뜻일 수도 있다. 

함부로 부르지는 않지만, 당시의 여성들도 남성 이름의 여성형 명사로 된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니코마케라는 여성 이름은 니코마코스(전쟁의 승리)의 여성형이다. 

한편으로는 글뤼케라(사랑스러운 사람, 달콤한 사람, Γλυκερα), 헤디스테(가장 큰 기뿜을 주은 사람, Ἡδιστη) 등과 같이 여성에게만 사용하는 이름도 있었다.

* 글루코스가 당분, 니코는 승리, 마케는 전쟁, 헤도는 기쁨 등등 그리스어 이름은 원뜻을 알기 쉽다. 

 

 

 

2) 중세 시대


중세시대 그리스는 동로마와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독립된 나라가 아니었다. 

그리스인들이 출신지나 별명 또는 직업명 등으로 성씨(가족이름)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동로마 중기에 해당하는 9세기부터였지만, 매우 드문 일이었다고 한다.  11세기-12세기 들어서야 귀족들이 간혹(often의 뜻 너무 어려움) 성씨를 사용하였다. 

영국도 11세기 노르만인들이 영국을 정복한 뒤, 토지를 재분배하고 세금을 걷기 위하여 귀족 중심으로 체계화된 성씨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 역시 비슷한 시기인 고려태조(10세기) 때 비슷한 목적으로 성씨를 체계화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사회 구성원 중 극히 일부인 귀족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이지 서민들은 성씨가 없었다. 

동로마를 멸망시킨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던 시기에는 터키식 성이 흔하게 사용되었다.  

그러나 후손에게 이어지는 진정한 의미의 성씨가 언제부터 널리 사용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특히 오스만 제국은 성씨보다는 부칭을 중시하였기 때문에 이를 밝히는 것이 더 어렵다고 한다.




3) 현대 그리스


1832년에 독립한 그리스는 1800년대에 들어서야 후손에게 이어지는 부계성이 일반화되었다. 수백년 전에는 귀족들만 가지던 성을 이제는 모두가 갖게 된 것이다. 1900년 민적법(호적법)을 실시하면서 한국인 모두가 성을 가지게 된 시기와 비슷하다. 

현대 그리스인의 성명은 3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름(given name) + 부칭의 소유격(patronymic) + 성씨(family name).

성씨의 기원은 부칭(patronymic) 또는 직업, 개인적 특징, 지명 등등이다. ‘개인이름 + 부칭 + 부칭에서 유래한 성씨’로 된 이름도 흔하다는 것이다. 

예를들면, 요안 파파도풀로스(미들 네임이 생략된 형태)의 아들과 딸의 이름은 공식적으로 다음과 같이 쓸 수 있다. 

아들 : 안드레아스 요안누 파파도풀로스(요안누는 요안의 속격)
딸 : 마리아 요안누 파파도풀루(미들네임과 라스트네임이 모두 속격) 

아들과 달리 딸은 ‘아무개씨의 딸’이라는 것이다. 

만약 딸이 ‘게오르게 데메트리아데스’와 결혼하였다면, 원래의 이름을 계속 사용하거나 다음과 같이 남편의 이름을 따라 미들네임과 라스트네임을 바꾼다. 남편의 퍼스트네임이 미들네임이 된다.

마리아 게오르규 데메트리아두(미들네임과 라스트네임이 속격. ‘아무개씨의 마리아’ )

만약 남편이 사망하면, 아래와 같이 원래의 미들네임(아버지이름)을 회복하기도 한다. 

마리아 요안누 데메트리아두(미들 네임과 라스트 네임이 속격)

이름의 기원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서기 1세기부터 19세기 사이에는 고대 그리스식 이름은 이교도의 이름이라서 기피하였다. 그 대신에 기독교식 이름을 대부분 사용하였다. 물론 이때도 그리스신과 관련된 이름을 기독교식으로 재해석하여 사용하기도 하였다. 독립국가로 재탄생한 현대 그리스에서는 고대 그리스식 이름이 다시 일반화되었다. 

현재는 이름+ 성 순서로 사용하지만, 과거의 그리스인들은 구어에서는 한국과 같이 성을 먼저 말하고 그 다음에 이름을 말하였다고 한다. 동양에서처럼 성 다음에 이름을 쓰는 유럽 나라는 헝가리이다. 1931년 최초로 비타민씨를 분리해 낸 센트죄르지 얼베르트(Szent-Gyorgyi Albert)는 헝가리 사람이다. 따라서 센트죄르지가 성이다. 

그리스어에서 아들은 주격 성을 사용하는데 비해 딸은 소유격 성을 사용하는 것은, ‘누구 집안의 여자’라는 의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동로마시대에는 각 성씨마다 남성형과 여성형이 따로 있어서 이를 사용하였다고 하니 그 때가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 부칭(patronymic)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만든 명칭이다. 부칭을 성씨보다 더 많이 쓰는 곳도 있다. 아이슬란드에서는 성씨를 거의 쓰지 않으며, 그리스와 러시아 등에서는 중간 이름이 주로 부칭이다. 부칭은 성씨(patronymic surname, 부칭성)로 바뀌는 경우도 많다. 영어의 존슨(Johnson)은 ‘존 썬’(John's son, son of John, 존의 아들)이라는 부칭이 성씨로 바뀐 예이다. 


* 영국은 13세기까지만 해도 성씨가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한동네에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살면 정육점 존(John Butcher), 잡화점 존(John Chandler) 등으로 구별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1400년대에 들어 성씨가 보편화되었다. 이 시기는 백년전쟁과 장미전쟁이 있던 시기이다. 성씨 보편화와 전쟁인력충원이 서로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이 시기 영국의 역사를 자세히 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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