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어 발음에서 유의할 점
우리말로 외국어를 표현할 때 어려움이 있듯이, 영어로 외국어를 표현할 때도 어려움은 있다. 이는 모든 언어에 공통으로 존재하는 특징이다. 특정 언어 문화권의 발성법은 다른 언어권의 발성법과 다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특정 외국어의 소리를 다른 언어로 표시하려고 하면 항상 문제가 생긴다. 비록 완전하지는 않지만 국제음성부호(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발음기호)를 제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외국어를 공부하는 과정 중에 다소 틀리게 발음하거나 다르게 발음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용감하게 큰 소리로 발음하면서 점차 고쳐나가면 된다. 이를 위해서는 원래 음이 무엇인지 그 기준은 알고 있어야 한다.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은 장모음 ‘에-’나 ‘오-’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 같다. 장모음 ‘에-’는 영어 사용자들은 대부분 '에이'라고 발음한다. 이를 표기할 때도 영어의 e는 발음이 다양하게 존재할 뿐만 아니라 장단음의 구별이 안가는 특징이 있고, ee는 장모음 ‘이-’를 표현할 때 사용하므로, ‘ay’를 사용하여 표현하는 것으로 보인다. 장모음 ‘오-‘도 영어로 잘 표현하지 못하여 프랑스어 등 외국어를 빌리거나 그냥 ‘o(오우)’를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보니 고전 라틴어든 고대 그리스어든 장모음 ‘오’를 ‘오우’로 읽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그런데 우리는 이들 영미인들을 흉내내서 발음할 이유가 전혀 없다. 우리는 장모음 ‘에-’와 장모음 ‘오-’를 잘 발음할 수 있기 때문이다(음가가 똑 같은 지에 대한 문제는 논외로 한다). 자음의 경우에도, ㅌ나 ㄸ를 구별하지 못해 영어로는 모두 t로 표현하거나 t와 t-h로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어와 고대 그리스어에서는 '드, 뜨, 트'는 서로 다른 음이며 각각 다른 용도로 사용한다.
라틴어는 기식음이 드물고, 영어의 k, t, p는 모두 기식음이다. 반면 그리스어와 한국어는 기식음(강기식)과 무기음(약기식), 다시 말해서 격음과 경음이 풍부하게 존재하고 이 음들을 구별하여 사용하고 있다.
그리스어는 모든 낱말에 대하여 기식음으로 시작하는지 아닌지를 알아볼 수 있다. 그만큼 기식음이나 그 중일부인 격음을 풍부하게 사용하고 있다. 그리스어의 자음은 글자 자체를 보고 기식음의 유무를 알 수 있지만, 글자 그 자체로는 기식음 유무를 알 수 없는 모음으로 시작하는 모든 그리스어 단어에는 기식음(거센소리와 비슷)인지 아닌지를 표시하고 있다. 다시 말해 그리스어에는 우리말과 비슷하게 평음 경음 격음이 풍부하게 존재하므로, 이를 표현하기에 우리말은 매우 적합하다.
현재는 영어가 세계에서 가장 우세한 언어이고, 우리의 생전에는 이 흐름이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 때 세계어처럼 군림했던 고대 그리스어나 라틴어 그리고 고대 중국어보다는, 영어의 생존조건이 훨씬 더 유리하다. 다양한 음성 저장방식과 문자 영상 음성을 통한 소통 방식 그리고 인쇄술 등의 발달로 라틴어가 사라져버리듯 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사실, 라틴어는 서로마 제국의 멸망과 함께 대중의 언어에서 점차 멀어졌지만, 1천년을 훨씬 더 지난 18세기에 뉴턴이 만유인력 법칙을 설명한 [프린키피아]라는 책을 저술할 때도 라틴어를 사용하였다. 그리고 조선시대 말까지 한국의 학자들이 학문 목적으로 주로 쓰던 언어는 고대 중국어였던 한문이었다. 문자로 뒷받침되는 언어의 생명력은 매우 오래 간다.
언어란 끊임없이 변화한다. 고대 그리스어도 예외일 수 없다. 발음과 표현에 약간(?)씩 차이가 있는 주요 방언만 해도 Attic, Doric, Ionic, Aeolic 등등이 있다. 각각의 방언들도 오랜 시간에 걸쳐 각각 변화를 겪었을 것이다. 코이네 그리스어(Koine Greek, Κοινὴ Ἑλληνική)를 거쳐 현대 그리스어에 이르기까지 변화는 계속되고 있다. 고대 그리스어는 고전 라틴어와 마찬가지로 이미 일반 대중들이 사용하지 않는 사어(Dead Language)이다.
언어의 속성상 ‘정확한 고대 그리스어의 발음’이란 말 자체가 성립이 불가능하다. 당시의 언어가 녹음되어 있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시간과 공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했으므로 당시에도 약간씩 다른 형태로 존재했을 것이다. 내친 김에 고대 그리스어 한국방언을 하나쯤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삶은 고통스럽다'를 그리스어로 옮기면, ὁ βίος χαλεπός ἐστιν(호 비오스 칼레뽀스 에스띤)이다. 고통스럽다는 형용사 χαλεπός(칼레뽀스)를 '칼로 뽀개다'를 연상하면서 외우면 더 잘 외워지지 않을까? 그런데 우리말에서는 '뽀개다'와 '포개다'는 같은 말이 아니다. 만약 이를 영어로 옮기면 '뽀'와 '포' 모두 'po'로 적고 발음도 비슷해져 버릴 것 것이다. 이런 현상이 영어권의 그리스어 발음에서도 나타난다.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발음할 때, 우리는 '뽀개다'와 '포개다'를 구별할 수 있는데, 이를 구별하기 힘들어하는 영미인들을 우리가 따라갈 이유가 없다. 칼레뽀스와 칼레포스와 깔레뽀스는 '칼로 뽀개다'와 '칼로 포개다' 가 다르듯이 서로 다른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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